
대만 설명 - 출처 야후 백과사전
중국 대륙 동남해상에 160㎞ 떨어진 곳에 있는 섬. 타이완섬과 펑후제도[澎湖諸島(팽호제도)]의 79개 섬, 기타 15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식명칭은 중화민국(Republic of China). 면적 3만 5980㎢. 인구 2254만 8000(2002). 동쪽으로 태평양, 남쪽으로 바스해협과 면해 있으며 서쪽으로는 타이완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국의 푸젠성[福建省(복건성)]과 접해 있다.
면적의 68.7%가 산지로 평지가 적은 편이며 100m 이상 산지가 2/3를 차지한다. 본섬인 타이완섬은 동부에 대부분의 산맥이 편재되어 있고 서부는 비교적 넓은 평야로 되어 있다. 산맥 동쪽은 타이둥지구대[臺東地溝帶(대동지구대)]를 사이에 두고 타이둥산맥[臺東山脈(대동산맥)]이 남북으로 뻗어 있고, 서쪽 경사면에는 쉐산산맥[雪山山脈(설산산맥)]·아리산산맥(阿里山山脈) 등 지맥이 이어져 있다. 북단부에는 쑤아오와 화롄[花蓮(화련)] 사이에 대단애(大斷崖)가 형성되어 있고 일대에 깊은 협곡이 발달해 있다. 주요 산맥으로 중양산맥[中央山脈(중앙산맥)]·츠가오산맥[次高山脈(차고산맥)]·위산산맥[玉山山脈(옥산산맥)]·아리산산맥·타이둥산맥·다툰산맥[大屯山脈(대둔산맥)]이 있고 3000m 이상인 산이 49개에 이른다. 특히 중양산맥은 타이완섬 면적의 50%를 차지하며, 위산산맥에는 최고봉인 위산산(3997m)이 솟아 있다. 구릉은 대부분 해발고도 250∼1000m 정도로 중양산맥의 좁고 긴 산기슭을 둘러싸고 형성되어 있다. 평원은 서부연해에 많이 분포되어 있으며 타이난평원[臺南平原(대남평원)]이 가장 넓다. 타이베이·타이중[臺中(대중)]에는 분지가 형성되어 있다. 하천은 대부분 동북쪽 산지에서 발원하며 흐름이 빠르고 수량이 적다. 또한 토사 함유량이 많고 양쪽에 사구가 발달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줘수이강[濁水溪(탁수계), 170㎞]이 가장 길고, 단수이강[淡水河(담수하)]·가오핑강[高屛溪(고병계)] 등 큰 강은 대부분 서쪽으로 흘러 타이완해협으로 들어간다. 기후는 아열대 및 열대 해양성기후로 다양한 특징을 나타낸다. 동부는 서부보다 겨울에 따뜻하고, 중부·서부는 높은 산때문에 기온변화가 심하다. 남부와 북부의 온도차이는 크지 않으나 우기와 건기가 반대로 찾아온다. 북부는 여름에 건조하고 겨울에 비가 내리며 기온이 15℃ 이하로 내려간다. 반면 중남부는 여름에 비가 내리고 겨울에 건조하며 기온은 최하 18℃를 유지한다. 평원과 산꼭대기 사이에는 열대·온대·한대의 3가지 기후가 나타나며 평지의 여름은 겨울보다 길다. 연평균기온은 15.3℃(1∼2월), 평균강우량은 2580m에 이른다. 계절풍은 강도와 발생시기가 다른데 10∼3월에 매우 강한 동북계절풍이 불고, 5∼9월에 서남계절풍의 영향을 받는다. 여름과 가을 사이에 태풍이 찾아온다.
고대중국의 진(秦)·한(漢)나라에서는 타이완을 동곤(東鯤), 삼국시대에는 이주(夷州)라고 불렀다. 230년 중국이 타이완을 최초로 경영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707년 수(隋)나라에서 리우차우(流求)를 복속시켰다. 당(唐)나라 때 이후 송(宋)나라 때까지 중국 연해에서 많은 사람들이 타이완으로 이주하였다. 원(元)나라 초기에 중국은 해외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1360년 펑후에 순검사(巡檢司)를 설치하고 푸젠성 둥안현[同安縣(동안현)]에 예속시켰다. 네덜란드가 1622년 펑후를, 24년 남부 타이완을 점령한 데 이어 26년에는 에스파냐에서 지룽[基隆(기륭)]·단수이[淡水(담수)]를 점거하였다가 42년 철수하였다. 61년 명(明)나라의 정성공(鄭成功)이 네덜란드를 철수시키고 타이완 개발의 기틀을 마련하기 시작하였다. 83년 청(淸)나라는 펑후를 점령하고 타이완을 중국의 푸젠성에 예속시킨 뒤 푸젠타이완성이라 칭하고 1부 3현을 설치하였다. 18세기 후반부터는 이주민이 급증하여 개척이 빠르게 진행되고 행정구역도 확대되었다. 아편전쟁 후 1858년 톈진조약[天津條約(천진조약)]에 따라 북부의 단수이가 개항된 이후 유럽 열강의 각축장이 되었다. 74년 일본은 일본인이 살해된 것을 이유로 타이완에 출병하여 이것이 94∼95년 청·일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전쟁 결과 타이완은 일본에 할양되어 51년간 식민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에 앞서 1884년 프랑스함대가 펑후를 점령하여 이듬해 청·프전쟁이 일어났고, 타이완성으로 개칭되었다. 95년 일본은 초대 대만총독에 하바야마 모토기[樺山資紀(화산자기)] 해군대장을 임명하고 이듬해 군정(軍政)을 폐지하였으며 타이완총독에 입법권을 위임하는 <법률 제63호>를 공포하였다. 97년 시모노세키조약[下關條約(하관조약)]에 따라 모든 타이완국민은 2년 내에 중국이나 일본의 국적을 선택하도록 하였다. 일본은 타이완 근대화를 위한 개혁을 실시하였으나 정치적 차별정책으로 반일 감정이 격화되어 1895년 타이완민주국 건설, 1920년 타이완의회 설치 청원운동 등의 항일운동이 전개되었다. 45년 7월 일본이 패전함으로써 타이완은 중국에 반환되었다. 49년 본토에서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함에 따라 장제스[蔣介石(장개석)]는 국민당정부를 타이완으로 옮기고 대륙수복의 기치 아래 경제발전을 통한 국력신장에 주력하였다. 정책적으로는 불접촉·불담판·불간섭의 3불정책을 고수하면서 본토와의 대화에 응하지 않다가 87년 7월, 38년만에 친족방문을 허용하는 등 교류를 확대하고 있다.
1949년 이래 타이완의 국민당정부는 아시아 최초의 공화국을 내세우고 민족·민권·민생의 삼민주의를 기본이념으로 하면서 반공과 대륙복귀를 국시로 삼아 대륙의 중국과 대립하여 왔다. 그러나 90년 야당인 민진당 등에서 <타이완공화국>으로의 독립을 선포해야 한다는 의견이 대두되었고, 92년 이후로는 타이완정부도 중국과의 대치에 따른 외교적 고립을 피하기 위해 본토를 인정하는 국가와도 공식외교관계 수립을 검토하였다. 국가기구는 국민대회, 총통, 행정원·입법원·사법원·고시원·감찰원의 5원과 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2000년 독재의 상징인 국민대회는 자진해산하였다. 총통은 국가원수로서 임기는 4년이다. 헌법은 46년 제정되어 이듬해 공포되었는데 국가권력을 정권(政權)과 치권(治權)으로 구분한 것이 특징적이다. 정권은 인민의 권력인 선거권·파면권·창제권(創制權)·부결권을 말하고, 치권은 정부의 권력인 행정권·입법권·사법권·고시권·감찰권을 뜻한다. 정당은 쑨원[孫文(손문)]이 중국국민당의 전신인 흥중회(興中會)를 창설한 이후 현재 제 1 야당인 민주진보당(DPP)과 민주진보당 등이있다. 1975년 장제스가 사망하고 78년 그의 아들 징궈[蔣經國(장경국)]가 뒤를 이었으나 88년 사망함으로써 리덩후이[李登輝(이등휘)] 부총통이 90년 총통으로 선출되었다. 1949년 이래 국민당 1당 지배체제를 펴오다가 87년 7월 계엄령을 해제하고, 89년 1월 복수정당제를 도입, 국민당 1당체제를 벗어났다. 리덩후이는 취임연설에서 중국이 타이완에 대한 무력행사를 포기하고 타이완의 대중국(對中國) 관계의 전개를 방해하지 않는다면 대등한 입장에서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힘으로써 관계개선의 뜻을 표명하였다. 이어 91년 40여 년간 중국과 전쟁상태임을 규정한 전시비상조치법인 <동원·반란 진압 시기> 임시조례을 폐기하고 민주적인 헌법 개혁안을 승인하였다. 대륙 중국정부와의 통일문제에 대하여는 중국이 1970년대 국제연합 가입과 대미수교 이후 80년대에 들어서 홍콩문제 처리방식인 <1국 2체제>를 내놓은 것에 대하여 타이완은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여 왔다. 이후 중국은 계속 타이완의 개방을 촉구하였으나 타이완은 3불원칙으로 맞서다가, 91년 국가통일위원회는 통일을 위하여 3불정책을 폐기하고 대신 통우(通郵)·통상·통항의 3통정책 실시, 고위인사 상호방문 등을 내용으로 하는 획기적인 <국가통일강령>을 확정하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93년 양측은 싱가포르에서 44년만에 첫 고위민간회담을 개최하였으나 회담의 정례화 등 원칙적인 사항만을 합의하는 데 그쳤다. 1987년 민간인의 중국거주 친척방문 허용 이후 90년 현재 94만 8000명이 중국을 방문하였다. 2000년 3월 실시된 총통선거에서 야당인 민진당 천수이볜 후보가 총통에 당선되어 대폭적인 개각을 단행했다. 외교노선은 독립자주와 호혜평등에 입각한 총체외교방침을 표방하고 있다. 친서방정책을 고수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경제력을 바탕으로 외교관계가 없는 국가들과 경제실리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군제도는 징병제로 병역은 육군은 2년, 해·공군은 3년이다. 총통이 3군통수권을 갖고 최고의결기관은 총통이 의장인 국가안전회의에 있으며 국방부장 아래인 참모총장이 실질적 작전지휘권을 행사한다. 2001년 총 37만명 규모의 병력을 갖추고 있다. 국방비는 1978년 미국의 군사원조가 중단된 이후 계속 증액되고 있으나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상대적으로 감소하여 2001년 88억 4120만 달러를 기록하였다.
청나라 말부터 수출지향적 농업이 발전하여 일본통치시대에 이르기까지 사탕수수와 쌀을 중심으로 한 농업발전이 계속되었다. 1930년대 군수공업, 50년대 수입대체공업의 발전과정을 거쳐 60년대 이후 외자도입에 의한 수출지향 공업화를 추진하여 민생 위주의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를 갖추었다. 농업은 기후가 온난하고 강우량이 풍부한 자연적 조건과 함께 수리관개 개발로 다모작이 이루어지고 있다. 쌀은 자급되나 밀·콩의 수입 의존도가 큰 식량 수입국이다. 주생산물로 쌀·사탕수수·고구마·콩류·바나나·파인애플 등이 있다. 농업인구는 전체 인구의 10.9%이며, 경지는 전체 면적의 25%인 약 90만 ha이다. 수산업은 근해어업 중심에서 최근 원양어업과 양식업으로 전환하였으며, 어획량은 130만t(1995)이다. 공업은 60년대 이후 노동집약적 수출가공업을 중심으로 급성장하여 공업인구가 전체 취업인구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70년대부터는 중화학공업화를 추진, 철강·석유화학·조선업에 주력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정보산업과 자동차산업에 힘쓰고 있다. 특히 92년에는 서비스업이 급성장하여 민간부문투자의 54.8%를 차지한 것이 특징적이다. 기간산업은 주로 국가에서, 소비재산업은 민간에서 주도하고 있다. 외환보유고는 95년 6월 현재 910억 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높다. 95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6.7%이며, 소비자물가상승률 4.1%, 실업률 1.56%이다. 한국·홍콩·싱가포르 등과 함께 신흥공업지역군(NIES)으로 각광받고 있다. 주요 수출품은 전기기구·전자 등 가공품이 주류를 이루고 수입품은 기계설비·중간원료 등이다. 주요 무역상대국은 미국·일본·홍콩·독일·영국 등이며 미국·일본이 수출입의 1/3을 차지한다. 2001년 대외무역은 수출 1220억 달러, 수입 1090억 달러를 기록하였으나 아시아 금융위기 여파로 일본 및 동남아에 대한 수출위축은 기업의 수익악화와 금융시장에 불안을 가져왔다.
주민은 17세기 광둥[廣東(광동)]·푸젠성 등지에서 이주해 온 한족(漢族) 98%와 원주민인 고산족(高山族)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는 베이징관어(北京官語)를 공용어로 하며 타이완어나 고산어도 쓰인다. 인구밀도는 높으나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고용이 증가하고 여성취업률이 높아 실업률은 낮은 편이다. 종교는 불교·도교·프로테스탄트·가톨릭·이슬람교 순으로 신도수가 많고 종교적 갈등은 거의 없다. 교육제도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으로 구분된다. 취학연령은 6세, 의무교육기간은 9년이며 9월부터 신학기가 시작된다. 대학입시 경쟁률이 높고 최근 본토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본토 대학에 유학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문화시설로 타이베이에 있는 고궁박물관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이곳 소장품 가운데는 은(殷)·주(周)나라로부터 청나라 때에 이르기까지의 유물과 본토에서 가지고 온 국보급 보물 및 서화예술품이 포함되어 있다. 언론은 88년 1월 신문창간 금지가 해제된 이후 국민당 기관지인 중앙일보를 비롯, 기관지인 신생보·연합보·중국시보 등이 있다. 통신사로 중앙통신(CNA)이 있고, 라디오방송국 33개와 TV방송국으로 중국전시(中國電視)·중화전시(中華電視)·타이완전시[臺灣電視(대만전시)]가 있다.
1948년 11월 남한과 단독 수교를 맺고 같은 분단국가 입장에서 긴밀한 정치·외교 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그러나 88올림픽을 계기로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급진전되고 92년 8월 24일 한·중 수교에 따라 타이완측은 곧 한국과 단교를 선언하고 9월에는 항공협정을 중단하였다. 93년 7월 실리외교 차원에서 한국과의 관계회복을 결정하고 비공식수교 협정에 조인하였다. 2002년 10월에는 대만 국적 항공기 운항이 10여년 만에 재기되었다. 2001년 대한수출은 43억 140만 달러, 대한수입은 58억 3500만 달러이다.
대만 관광정보 - 출처: 대만 관광청, 주한 타이페이대표부 공보실, island_view
민족구성: 대만인 대다수는 한족으로, 대부분 중국 본토의 복건성 출신 이주민의 후손이며, 또한 2차세계대전 뒤 중국 전역에서 대만으로 건너온 사람들도 많다. 그리고 규모 가 꽤 큰 하카(객가) 소수민족이 있으며, 각 섬의 원주민들도 있다.
언어: 북경어는 정부, 교육, 언론의 공식 언어이다.
푸지안성의 방언인 대만어는 대다수 주민들이 모국어처럼 사용하고, 대만의 오랜 "통속어"로, 점차 언론과 업계에서도 선호하고 있다. 하카 방언은 타이완의 한 중요한 소수민족이 사용하는 언어이다.
생활: 현대의 평균적인 대만인들은 중노동에 매달리는 만큼이나 재미있고 열정적으로 여가활동을 한다.
대만인들은 세계에서 1인당 영화관을 찾는 비율이 가장 높을 정도로 영화를 좋아한다. 대만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람 스포츠는 야구로, 프로리그는 단일 시즌이며 수천명의 열성 팬을 보유하고 있다. 자연적 환경으로 골프인구도 상당하여, 대만 전역에는 골프코스와 연습장이 있으며, 프로 토너먼트 경기도 자주 열린다.
환전: 중화민국의 공식화폐는 신타이비(NT$-위안)이다.
동전은 1,5,10,50위안이 있고, 지폐 는 50,100,500,1000위안이 쓰이고, 환율은 매일 바뀌지만 위안화의 환율은 최근 기준으로 대략 미국 1달러당 32위안 정도이다.
여행: 대만은 중국 본토와는 달리 국제면허증을 현지 면허와 같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여행기간동안 주변 관광을 스스로 하길 원한다면 랜트카를 대여하여 관광할 수 있다.
하지만 좁은 땅덩어리에 차가 너무 많고, 주차공간은 적기 때문에, 관광시간보다 주차공간 찾는 시간이 더 걸린다는 말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장기체류를 원한다면 대만의 운전면허증을 따야 하는데, 국제면허증만 있다면 별도의 시험없이 대만 면허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주요 관광지:
타이베이 :
타이뻬이는 과거와 현재가 복합된 두가지 얼굴을 지니고 있다. 시 중심부에는 총통부, 국부기념관, 중정기념당 등의 명소가 있으며 특히 타이뻬이 근교에는 중국 5,000년 역사의 보고이자 세계 제 4대 박물관 중 하나인 고궁박물원이 자리잡고 있다.
타이뻬이 근교와 대만 북부 :
타이뻬이 시 북쪽에는 양밍산 국립공원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곳에는 장엄한 폭포와 호수, 온천, 하이킹도로 등이 있다. 또 다채로운 야생의 꽃들도 관찰할 수 있다. 타이완 북부지역에는 이색적인 소도시와 낭만적인 해변등이 있어 좋다.
대만 중부 :
대만 중부의 중심도시로는 타이중을 들 수 있다. 타이중에서 관광객들은 다채로운 민속 공연을 관람 하거나 유서깊은 사찰과 시골 풍경등을 구경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뛰어난 것은 중앙 횡단도로 주변에 위치한 르웨탄과 아리산 국립공원의 빼어난 자연경관을 꼽을 수 있다. 르웨탄 주변은 특히 신혼 부부에게 가장 이상적인 여행지로 꼽히고 있아.
대만 남부 :
남부는 타이난과 가오슝이 중심 도시다. 청대부터 도시를 이루었던 타이난에는 수많은 고찰과 역사 유적들이 숨쉬고 있으며 대만의 민족영웅인 정성공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대만 동부 :
동부의 대표적인 도시는 화롄이다. 여기서는 빼어난 솜씨로 가공된 대리석 조각품과 함께 아미족의 노래와 춤을 볼 수 있다. 또 화롄에서 차로 약 한시간 거리에 있는 타이루커협곡은 굽이쳐 흐르는 급류위로 깎아지른 듯한 대리석과 화강암 절벽이 자리잡고 있는데 자연의 신비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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